건축

주택법 개정이 모듈러 건축 기술에 미친 영향

archiclassone 2025. 4. 15. 15:00

1. 주택 공급 위기와 주택법 개정의 배경

최근 몇 년간 한국 사회는 지속적인 주거 불균형과 공급 부족 문제에 직면해왔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 가격 급등, 전세 시장의 불안정, 청년과 고령층의 주거 취약 문제 등은 정부로 하여금 보다 빠르고 유연한 주택 공급 수단을 강구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모듈러 건축은 짧은 공사 기간과 저렴한 비용, 공장 제작을 통한 품질 확보라는 장점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존의 주택법은 전통적인 현장 시공 중심의 건축 방식을 전제로 설계되어 있어, 모듈러 주택의 도입과 확산에 제도적 한계가 존재했다. 특히, ‘주택의 정의나 인·허가 절차, 구조 기준, 면적 산정 방식 등이 모듈러 시스템과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고, 이로 인해 기술은 존재하되 현실에서는 적용이 쉽지 않은 상황이 이어져 왔다.

이에 정부는 2021년부터 모듈러 주택을 포함한 산업화 건설 방식의 제도화를 추진해왔으며, 2023년에는 주택법 및 관련 시행령, 고시 등을 개정해 모듈러 주택을 공식적인 공급 주택 유형으로 인정하였다. 이 개정은 단순한 건축 기술의 수용을 넘어, 새로운 주택 유형의 법적 지위를 명확히 하고 행정 절차를 간소화하며, 관련 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데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기존에는 실험적 프로젝트로 국한되던 모듈러 건축이 이제는 공공임대주택, 청년주택, 긴급 주거지원 시설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며 주택 정책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주택법 개정이 모듈러 건축 기술에 미친 영향
주택법 개정이 모듈러 건축 기술에 미친 영향

 

2. 법 개정 이후 모듈러 건축 기술의 확산과 제도적 수용

개정된 주택법에서는 모듈러 주택을 포함한 산업화 주택의 법적 정의를 구체화하고, 이에 따른 건축허가 및 사용승인 절차의 기준을 명확히 하였다. 예를 들어, 기존에는 모듈러 건축의 경우 현장에서의 구조 연결 방식이 법적 기준에 부합하는지 여부에 대해 지방자치단체와 건축사 간의 해석 차이로 인해 인허가 과정에서 지연되는 사례가 많았다. 그러나 개정 이후에는 사전인증제도와 모듈 단위별 설계 도면 제출 요건이 정리되면서 행정 혼선이 줄어들었고, 모듈러 건축의 설계 및 제작, 설치 과정이 법령 내에서 체계적으로 다뤄지게 되었다.

또한 주택법 개정은 관련 기술 기준의 변화도 동반했다. 국토교통부는 모듈러 주택의 화재 안전, 구조 안정성, 방수·단열 성능 등에 대한 기술 기준을 별도로 마련하고, 이를 만족한 모듈 시스템에 대해서는 표준화된 형태로 보급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공장 제작의 모듈이 일정한 기준을 충족하면 현장에서의 검사 항목을 간소화할 수 있음을 의미하며, 전체 공정의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이고 품질 관리를 일원화할 수 있게 한다. 특히,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 공공기관은 주택법 개정 이후 모듈러 기술을 도입한 시범사업을 확대하고 있으며, 이러한 시도는 민간 건설업계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되었다.

 

3. 기술적 진보와 산업계의 대응 변화

주택법 개정 이후, 모듈러 건축은 더 이상 대체적 수단이 아닌 새로운 주택 공급 방식의 하나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건설 기술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과거의 모듈러는 단순한 박스형 구조에 머물렀다면, 최근에는 복층 구성, 입체적 배치, 커스터마이징 가능한 모듈 설계가 가능해지면서 디자인 다양성과 기능적 유연성이 크게 향상되었다. 특히 고정밀 철골 모듈, 콘크리트 하이브리드 모듈, 스마트 홈 설비 통합형 모듈 등의 개발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주택법 개정 이후 가능해진 사전 설계 검토와 모듈 사양 등록제도의 도입이다.

건설 산업계는 이러한 변화에 발맞추어 모듈러 건축을 신성장동력으로 인식하고 투자와 연구개발을 강화하고 있다. 대형 건설사들은 별도의 모듈러 전문 계열사를 설립하거나, 기존 프리캐스트 콘크리트(PC) 기술과 결합한 하이브리드 건축 시스템을 개발하는 등 기술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나서고 있다. 또한, 중소 모듈러 전문 기업들은 주택법 개정을 계기로 공공 프로젝트에 본격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확보하였으며, 이를 통해 자금 조달과 기술 검증, 시공 실적 확보 등 다방면에서 긍정적 영향을 받고 있다. 모듈러 기술은 단순히 구조체 제작에 그치지 않고, 에너지 절감, IoT 기반 스마트 제어, 탄소 저감형 친환경 자재와도 연계되어 향후 지속가능한 주거 모델로서의 가능성도 높이고 있다.

 

4. 제도 정착을 위한 과제와 미래 방향

법 개정으로 인해 모듈러 건축의 제도적 기반은 마련되었지만, 현장 적용과 산업 확산 측면에서는 여전히 과제가 남아 있다.

첫째, 기술 기준은 마련되었지만, 지방자치단체 간의 해석 및 행정 경험 차이로 인해 인허가 속도나 절차에서 편차가 존재한다.

둘째, 일부 건축사나 시공사, 감리자들이 모듈러 공법에 대한 경험이 부족해 설계 오류나 품질 저하가 발생하는 사례도 있다.

셋째, 주거 소비자 역시 모듈러 주택에 대한 신뢰가 아직은 낮은 편이며, 공간 효율, 방음, 내구성 등에 대한 선입견이 존재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안내서와 표준화된 설계 지침의 보급, 전문 인력 양성, 입주자 대상 홍보와 교육 등이 병행되어야 한다.

향후에는 모듈러 주택을 단순한 신속한 공급수단이 아닌, 지속 가능한 건축 생태계의 핵심 요소로 인식해야 한다. 특히 탄소중립 건축, 도시 재생, 긴급 주거 대책 등 다양한 분야와 연계될 수 있는 융합형 기술로서의 접근이 필요하다. 정부는 중장기적으로 모듈러 건축을 위한 공공 표준 모델을 구축하고, 성능 중심의 인증 체계를 도입하여 모듈러 기술이 단순 시범적 기술이 아니라 본격적인 주택 공급 방식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주택법 개정은 단순한 행정 절차의 변화가 아니라, 건축과 주거의 미래를 새롭게 그리는 첫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