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도시계획법과 인공지능(AI) 기반 도시 설계 기술

archiclassone 2025. 4. 15. 18:00

1. 도시계획법의 역할과 도시 설계의 제도적 틀

도시계획은 한 도시의 성장과 발전을 체계적이고 지속 가능하게 이끌기 위한 공간적, 법적, 행정적 과정이다. 인구 증가, 산업 집중, 교통량 확대 등 도시화로 인한 복합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시계획은 필수적인 도구로 기능하며, 이에 따라 각국은 도시계획을 법률로 명문화하여 공공성과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흔히 도시계획법이라 불리는 이 법은 도시 및 국토 전반의 공간 구조와 이용 행위를 관리하는 핵심 법령이다. 이 법은 도시와 비도시 지역을 구분하고, 용도지역·지구·구역의 지정 및 변경, 도시관리계획 수립, 기반시설 확보, 개발행위 허가 등 도시 설계와 관련된 전 과정에 법적 기준을 부여한다.

도시계획법은 도시 설계를 위한 규제적 틀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예를 들어, 도심의 건축물 높이 제한, 주거지와 상업지의 분리, 교통망 배치, 공원 및 녹지 조성, 공공시설 설치 등의 요소는 모두 도시계획법에 따른 기준과 절차에 의거하여 수립된다. , 도시 설계는 예술적이고 창의적인 활동일 수 있지만, 동시에 법적 절차와 행정 승인에 의해 결정되는 복합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이처럼 법은 도시 공간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를 정량적으로 규정하고, 이해관계자 간 갈등을 조정하며, 도시 환경의 공공성과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도시계획법과 인공지능(AI) 기반 도시 설계 기술
도시계획법과 인공지능(AI) 기반 도시 설계 기술

 

2. 인공지능 기술의 등장과 도시 설계 방식의 전환

최근 들어 인공지능(AI) 기술이 도시 설계에 빠르게 도입되면서, 전통적인 도시계획 패러다임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과거에는 도시 설계가 전문가의 경험과 통찰에 의존해 비교적 정적인 분석을 바탕으로 진행되었다면, 이제는 대량의 도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정밀하고 유연한 분석이 가능해졌다. AI는 교통 흐름, 인구 밀도, 환경 변화, 에너지 소비, 토지 이용 패턴 등 복잡한 변수를 실시간으로 학습하고 예측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도시 설계자는 보다 효율적이고 기능적인 도시 구조를 제안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머신러닝과 딥러닝 알고리즘은 다양한 도시 데이터를 학습하여 미래의 도시 변화를 예측하고, 특정 설계안이 가져올 영향을 사전에 시뮬레이션할 수 있도록 해준다. 예를 들어, AI는 도시 내 차량의 흐름 데이터를 분석해 가장 효율적인 교통망을 설계하거나, 보행자 이동 패턴을 반영해 공공 공간의 배치와 형태를 자동 조정할 수 있다. 또한, 드론 촬영 및 위성 이미지와 연동된 AI 분석은 대기질, 도시 열섬, 일조권 등을 정밀하게 분석하여 도시 블록 단위의 설계를 미세하게 조정하는 데 활용된다. 이처럼 AI는 도시 설계를 데이터 기반의 과학적이고 실험적인 영역으로 확장시키며, 기존의 설계 방식에 근본적인 혁신을 일으키고 있다.

 

3. 도시계획법과 AI 기술의 제도적 충돌과 융합

AI 기술의 발전이 도시 설계에 다양한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도시계획법 체계와의 충돌도 분명히 존재한다. 현재의 도시계획법은 전통적인 개발 방식을 전제로 하여 인허가 절차, 용도지역 지정, 계획 변경 등의 프로세스를 정형화하고 있다. 그러나 AI 기반 설계는 이러한 법적 기준을 유연하게 해석하거나, 지역 맞춤형 최적해를 도출하는 데 중점을 두기 때문에 정적인 법체계와 실시간 예측 기반 설계 사이의 간극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AI가 최적이라 판단한 대지 배치나 건축물 배치는 기존의 용도지구 기준을 초과하거나, 일조권·조망권 규제와 충돌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설계안이 행정 심의에서 반려되는 사례가 발생한다.

따라서 도시계획법은 AI 기반 설계 기술과 공존할 수 있도록 점진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첫째, 정적인 기준 중심의 규제 체계를 탄력적 가이드라인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둘째, 도시계획 정보체계(UIS)AI 설계 플랫폼 간의 연계성을 강화하여 데이터 기반 행정 결정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셋째, AI가 제안한 설계안에 대해 평가할 수 있는 정량적 기준이 필요하며, 이는 법령과 기술의 융합적 기준 체계로 구축되어야 한다. 나아가 법령 내에서 AI 설계의 법적 지위를 인정하고, 인허가 심사 과정에 AI 분석 결과를 공식 참고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 제도도 도입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궁극적으로 도시계획의 신뢰성과 객관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이다.

 

4. AI 기반 도시 설계 기술의 실제 활용 사례와 변화된 실무

AI 기반 도시 설계 기술은 이미 다양한 프로젝트에서 그 실효성을 입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싱가포르는 국가 도시계획청(URA)AI를 활용해 토지 이용 시나리오를 수립하고, 건축물 배치 및 일조권, 통풍 통로, 대기 흐름 등을 자동 시뮬레이션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한국에서는 서울특별시가 AI 기반 도시 모형 데이터를 구축해 교통량, 유동인구, 자전거 이용률 등의 변화를 예측하고 도로 및 공공시설의 위치 재배치를 시도하고 있다. 이외에도 민간 건축설계사무소에서는 AI 설계 플랫폼을 이용해 다양한 대안 설계를 자동 생성하고, 용적률·채광·조망 등 각 요소별 점수를 기준으로 최적안을 도출하는 방식이 보편화되고 있다.

도시 설계 실무 또한 이러한 흐름에 따라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법령 검토와 수작업 중심의 도면 작업이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데이터 분석, 시뮬레이션, 자동화 설계가 실무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건축사나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AI 툴에 대한 이해와 활용 능력을 갖춰야 하며, 법적 기준과 기술적 가능성 간의 균형을 고려할 수 있는 융합형 역량이 요구된다. 이에 따라 대학과 연구기관에서도 도시계획과 인공지능을 결합한 융합 교육과정이 신설되고 있으며, 정부 역시 관련 R&D를 지원하고 법제 개선을 검토 중이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기술 도입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데이터 기반의 객관성과 지속가능성 중심으로 재편하는 의미 있는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5. 향후 방향: 법과 기술의 동시 진화

도시계획법과 인공지능 기반 도시 설계 기술은 이제 경쟁 관계가 아닌 상호 보완적 관계로 재정의되어야 한다. 도시는 더 이상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복잡한 시스템의 집합체이며, 그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설계하는 데 있어 AI의 역할은 점점 더 커질 것이다. 반면, AI의 제안이 시민의 권리나 환경적 지속 가능성과 충돌하지 않도록 하는 통제 장치로서 법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러므로 미래 도시계획은 정적인 규제와 유동적인 기술이 조화를 이루는 동적 계획(dynamic planning) 체계로 발전해야 하며, 이를 위한 법제적 기반과 기술 인프라가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AI가 제시하는 최적해는 반드시 도시의 사회적 가치, 역사성, 공동체성 등 비정량적인 요소와도 균형을 이루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전문가, 시민, 기술자 간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향후에는 도시계획법 안에 기술 변화에 대한 수용 조항이나 유연한 해석 규정, 시범 프로젝트 적용 조항 등을 포함하여, 법이 기술의 발목을 잡기보다는 그 진화에 발맞추는 구조로 재편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변화를 통해 인공지능은 도시 설계의 도구를 넘어, 시민 삶의 질을 높이는 실질적인 도시 복지 기술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