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유식 도시의 부상과 법제도의 공백
기후 변화와 해수면 상승, 도시 과밀화 등의 글로벌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해양 공간을 활용한 부유식 도시(Floating City) 개념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부유식 도시는 해양 위에 건축된 자급형 플랫폼들이 모여 주거, 상업, 산업, 공공 기능 등을 수행하는 새로운 형태의 도시다. 이러한 도시 유형은 기존의 육상 기반 도시계획 틀을 넘어서기 때문에, 법·제도적 측면에서도 다수의 미비점과 충돌이 발생한다.
현재 대부분의 국가에서 도시계획법과 건축법은 육지를 전제로 하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또한 해양은 선박, 어업, 항만물류 등에 대한 법률이 우선 적용되며, 이와 관련된 국제 해양법, 영해법, 해양환경보호법 등도 육상 기반 건축법과 직접적인 연계성이 부족하다. 이로 인해 부유식 도시가 실제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규제 체계의 정비가 필수적이며, 법적 지위, 관할권, 안전기준, 환경 영향 평가 등의 문제에 대한 정밀한 해석과 입법이 요구된다.
2. 관할권과 법적 지위의 불확실성
부유식 도시가 물리적으로 해양에 위치한다는 특성상, 관할권 문제는 가장 근본적인 규제 이슈 중 하나다. 해양은 국제법상 공해(High Seas), 영해(Territorial Waters), 배타적 경제수역(EEZ), 접속수역 등 다양한 구역으로 구분되며, 각 구역마다 적용되는 국가의 권한과 책임이 다르다. 부유식 도시가 자국의 영해 내에 존재한다면 비교적 규제 정비가 용이하겠지만, EEZ 또는 공해 상에 설치될 경우 관할 국가와 국제사회 간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수 있다.
특히 UN 해양법협약(UNCLOS)에 따르면 공해는 특정 국가가 독점적으로 영토로 삼을 수 없으며, 항해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따라서 부유식 도시가 자국의 관할권 밖에서 반영구적으로 설치되어 기능할 경우, 해당 구조물의 주권적 지위, 법적 소속, 국적 적용 등이 불분명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예컨대, 해당 도시에 거주하는 시민의 출생, 사망, 범죄, 행정 서비스 등은 어느 국가의 법으로 다룰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명확하지 않다.
3. 건축법 및 도시계획법 적용의 한계
현행 건축법과 도시계획법은 대체로 지반 기반 구조물을 전제로 설계되어 있다. 부유식 도시는 부유체 위에 세워진 구조물로, 고정된 토지가 아닌 수면 위에 위치하며, 해수면의 변동이나 파랑, 조류 등에 따라 물리적 위치나 높이가 변화할 수 있다. 이로 인해 ‘건축물’로 인정받지 못하거나, 준공 기준이 부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한국 건축법 제2조에서는 “건축물이란 지반 위에 설치된 공작물”로 정의되는데, 이는 부유식 건축물의 법적 인정 여부를 불명확하게 만든다. 더불어 부동산 등기, 재산권 보호, 세금 부과, 소방 기준, 화재대피시설 기준, 구조 안전성 평가 등의 규정 역시 육상 건축을 전제로 하므로, 수면 위 건축물에는 법적 적용의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
도시계획 측면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존재한다. 기존의 지구단위계획이나 용도지역 설정은 육지 기반의 토지이용 개념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해상 공간에 도시 기능을 분산 배치하거나, 모듈화된 도시를 이동시키는 개념과 충돌한다. 이에 따라 새로운 유형의 ‘해양 도시구역’, ‘수상 도시 지구단위계획’ 등의 법정 제도 마련이 절실히 필요하다.
4. 안전기준과 환경규제의 미정비
부유식 도시는 해양이라는 극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어, 구조 안전성, 해상 재난 대응, 환경 영향 측면에서 고유한 규제체계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는 이러한 특수 상황을 반영한 별도의 건축기준 또는 구조설계기준이 부재하다. 예컨대, 부유식 플랫폼의 파력 저감 설계, 계류 시스템의 내구성, 수중 진동 저감, 해수 염분에 의한 부식 대응 등은 기존 건축기준법의 적용범위를 넘어선다.
또한, 환경영향평가(EIA)와 관련해서도 부유식 도시의 자가 발전 시스템, 담수화, 폐기물 처리, 생물부착 등은 해양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하지만, 수중생태계 보호에 대한 규정은 매우 제한적이다. 국제적으로도 수상 건축에 대한 통일된 환경기준이 존재하지 않아, 국가 간 협력이 이뤄지지 않는 한 부유식 도시의 환경 리스크는 규제 사각지대에 방치될 수 있다.
더 나아가, 지진, 태풍, 쓰나미 등 자연재해에 대한 내재적 안전 기준 마련과 더불어, 해양 테러, 침입, 해적 행위 등 국제적 해상 치안 문제까지도 포괄하는 도시방호 규범이 필요하다.
5. 국제 협약과 국내 법제 정비의 방향
이러한 규제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먼저 국제 사회 차원의 해양 도시 정의 및 법적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 UN 해양법협약 개정 또는 부속 의정서 형태로 부유식 도시 및 해상 정주지의 국적 인정, 법적 지위, 이동성에 따른 적용 기준 등이 논의될 필요가 있다. 이와 동시에 IMO, IALA, IHO 등 해양 관련 국제기구들과 협력하여 해상 교통 분리, 해상 구조물 표준화, 환경 보호 기준 등의 통일된 프로토콜을 만들어야 한다.
국내에서는 부유식 도시 건축을 합법적으로 인정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부유식 도시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 이 법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
• 수면 위 구조물의 법적 정의 및 건축물 인정 기준
• 부유식 도시의 지구단위계획 및 인허가 절차
• 해양 공간의 구역 설정 및 사용 권한 명시
• 부유식 구조물의 안전성 및 재난대응 기준
• 환경 보호 및 에너지 자립 관련 기술 기준
• 해상 인구의 주민 등록, 세금, 의료, 교육 등 행정 서비스 기준
또한, 조세 체계, 부동산 권리 설정, 민형사적 적용 범위에 대한 법률적 연계도 병행되어야 하며, 장기적으로는 육상 도시와 해상 도시가 법제적으로 상호 연결되는 ‘복합 도시권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부유식 도시 건축의 실현 가능성은 기술의 발전만으로 달성되지 않는다. 실질적인 제도적 정비와 국제적 규범의 형성 없이는, 부유식 도시는 공학적 이상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향후 부유식 도시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법제도의 혁신’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하며, 이를 위한 정부, 국제기구, 민간의 협력적 거버넌스 구축이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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