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한 건축 규정과 미래형 건축 기술

archiclassone 2025. 4. 20. 15:00

1. 기후 위기 시대, 건축이 마주한 환경적 책무

21세기 인류가 직면한 가장 중대한 과제 중 하나는 기후 변화다. 지구 평균기온 상승, 해수면 상승, 빈번해지는 이상기후, 대기 질 악화 등은 단지 자연환경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일상생활과 도시 인프라를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특히 건축 부문은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약 36%를 차지할 정도로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산업이다. 이는 건축물의 설계, 자재 생산, 시공, 운영, 해체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서 에너지와 자원이 소비되기 때문이다.

기후 변화 대응에 있어 건축의 역할은 단지 에너지를 절약하는 수준을 넘어, 적극적으로 탄소 배출을 줄이고, 환경 회복력을 높이는 공간을 구현하는 것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전 세계적으로 건축 관련 법규와 기술 기준은 점차 강화되고 있으며, 기후 변화에 적응하는 건축 설계 방식이 미래형 건축의 핵심 지표로 자리잡고 있다.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한 건축 규정과 미래형 건축 기술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한 건축 규정과 미래형 건축 기술

 

2. 건축 관련 법규의 변화와 탄소중립 규제의 강화

기후 대응 건축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각국 정부는 다양한 법제도적 정비를 추진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유럽연합은 건축물 에너지 성능 지침(EPBD)’을 통해 모든 신규 건축물의 **탄소중립(Net Zero Energy Building, ZEB)**화를 의무화하고 있으며,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등은 2030년까지 건물 부문에서 탄소배출을 50% 이상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미국의 캘리포니아주는 ‘Title 24’를 통해 신축 건물의 태양광 설치를 의무화했고, 캐나다는 전국적으로 기후 적응형 건축기준을 도입했다.

한국 역시 2050년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건축 분야 로드맵을 수립하고 있다. 2020년 이후 단계적으로 적용된 제로에너지건축물(ZEB)’ 인증 제도는 일정 규모 이상의 공공건축물부터 민간건축물까지 확대 적용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단열 기준 강화, 재생에너지 설비 설치 의무화, 건축물 에너지평가 의무화, 친환경 자재 사용 권장 등의 세부 규정이 도입되었다. 또한 최근에는 기후위기 대응 건축법 제정이 추진되며, 기후 회복력(Resilience)과 탄소 감축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규범이 정립되고 있다.

 

3. 기후 대응을 위한 미래형 건축 기술의 발전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미래형 건축 기술은 단순한 절약이 아닌, 적응과 복원력, 순환성, 지능화라는 키워드로 요약된다.

첫째, 에너지 효율 극대화 기술이다. 고성능 단열재, 3중 유리 창호, 기밀 시공, 고효율 HVAC 시스템, 지열 및 태양광 기반의 재생에너지 통합 설비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기술들은 ZEB 인증 기준을 만족시키기 위한 필수 요소로 작동하며, 스마트 계량기와 자동 제어 시스템을 통해 실시간으로 에너지 흐름을 관리한다.

둘째, 기후 회복형 설계 기술이다. 이는 침수 대응형 저지대 건축, 고온 대응형 반사 지붕 재료, 자연환기 및 일사 조절 시스템, 가변형 입면 디자인 등을 포함하며, 점점 빈번해지는 폭우, 폭염, 태풍 등의 이상기후에 건축물이 적극 대응할 수 있도록 한다. 특히 녹색 인프라(Green Infrastructure), 예컨대 옥상 녹화, 수직 정원, 빗물 저류 시스템 등은 도심 내 열섬 현상 완화와 생태계 복원에도 기여한다.

셋째, 순환 경제형 자재 및 기술이다. 친환경 인증을 받은 저탄소 건축 자재, 재활용 가능 소재, 바이오 기반 소재(: 목질, 대나무, 헴프크리트 등)가 건축 설계에 적극 활용되고 있으며, 건축물의 해체 후 자재를 다시 사용할 수 있는 모듈화·건식 시공 기술도 주목받고 있다. 이는 건축물의 전 생애주기에서 탄소배출량을 줄이고, 폐기물 발생을 최소화하는 중요한 전략이 된다.

 

4. 데이터 기반 설계와 디지털 기술의 융합

기후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물리적 설계뿐 아니라, 디지털 기술을 통한 정밀한 예측과 관리가 병행되어야 한다. 이에 따라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ing),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건축 에너지 시뮬레이션(EMS), AI 기반 예측 분석 등 첨단 기술들이 건축 설계 및 운영에 통합되고 있다. BIM은 초기 설계 단계에서 에너지 사용량, 일사량, 환기 시뮬레이션 등을 미리 분석할 수 있도록 하며, 디지털 트윈은 실제 건축물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가상 공간에서 시나리오별 운영 전략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게 한다.

AI와 빅데이터 기술은 기후변화에 따른 지역별 위험도(: 침수, 열섬, 강풍)를 예측하여 위치 맞춤형 건축 전략을 수립하는 데 도움을 주며, IoT 센서를 활용한 스마트 건물 관리 시스템은 에너지 사용량, 온습도, 실내 공기질 등 다양한 환경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분석하여 자동으로 최적화된 운영을 수행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디지털 기반 기술들은 향후 에너지 성능 인증, 탄소배출 측정, 기후위기 적응 인증 제도 등과도 연계되어 법제도와 기술의 통합적 진화를 이끌 것으로 보인다.

 

5. 기후 대응 건축의 미래 방향과 제도적 과제

기후 변화 대응 건축은 단순한 기술 적용이나 제도 변화에 머물지 않고, 건축의 본질적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탄소를 줄이는 것에서 나아가, 환경과 공존하며 자원을 순환시키는 건축이 요구되며, 이는 건축이 문명의 기반에서 지속가능한 생존의 도구로 진화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선 기술적 역량 외에도 제도적 기반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

그러나 아직 현실적으로는 몇 가지 과제가 남아 있다.

첫째, 고성능 건축 기술의 초기 비용 부담과, 민간 건축주들의 인식 부족이다. 기술의 상용화를 위해서는 정부의 재정 지원, 세제 혜택, 인센티브 제도가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

둘째, 지역 간 인프라와 기술 격차 해소도 중요하다. 특히 농어촌, 중소도시 등에서의 기후 대응 건축 확산을 위해 지역 맞춤형 기준과 현장 기술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

셋째, 국제기준과 국내 기준 간 정합성 확보와 탄소중립 건축 관련 법·제도의 지속적인 업데이트도 필수적이다.

기후위기 시대의 건축은 단지 공간을 짓는 것이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한 지속가능한 삶의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건축이 변화하는 기후에 적응하고, 동시에 긍정적인 환경적 영향을 주는 적극적 주체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술과 제도, 사람의 의식이 함께 진화해야 할 시점이다. 궁극적으로 기후 변화 대응 건축은 도시와 자연, 인간과 기술이 조화를 이루는 미래를 향한 지혜이자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