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특별건축구역의 사례 분석 : 서울의 성수동 리모델링 사례

archiclassone 2025. 6. 17. 09:00

1. 성수동의 도시적 맥락과 리모델링 필요성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위치한 성수동은 과거 산업화 시대의 대표적인 수제화 생산기지이자 공장밀집지였으나, 1990년대 이후 산업구조 변화와 제조업 쇠퇴로 인해 지역이 점차 침체되었다. 폐공장과 낙후된 상가, 좁고 어두운 골목길 등은 성수동 일대의 도시경관을 단조롭게 만들었고, 이는 경제적, 사회적 기능 저하로 이어졌다. 그러나 2010년대 초반부터 문화예술가와 청년 창업자들이 저렴한 임대료와 독특한 공간 구조를 활용해 카페, 갤러리, 디자인 스튜디오 등을 개설하면서 ‘성수동 르네상스’로 불릴 정도의 변화가 시작되었다.

이러한 자생적 변화는 도시재생 차원에서 매우 주목할 만한 흐름이었으나, 기존 건축법 체계 하에서는 창의적인 리모델링과 공공성과 상업성이 결합된 공간 설계가 제약을 받았다. 예컨대, 폐공장을 카페와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려 해도 건폐율, 용도변경, 주차장 기준 등의 규제 장벽이 높았으며, 가변적인 공간 활용이나 다층적 기능 구성에 어려움이 존재했다. 이러한 한계는 민간의 자생적 재생 움직임을 제도적으로 수용하고 지원하는 틀로서 ‘특별건축구역’ 지정의 필요성을 제기하게 되었다.

특별건축구역의 사례 분석 : 서울의 성수동 리모델링 사례
특별건축구역의 사례 분석 : 서울의 성수동 리모델링 사례

 

2. 성수동 특별건축구역 지정 배경과 계획 방향

서울시는 2014년부터 성수동 일대를 대상으로 도시재생 활성화 지역으로 지정하고, 문화예술과 창업이 공존하는 창의산업지로 육성하고자 정책적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2017년, 성동구 성수동2가 일대 약 55,000㎡를 특별건축구역으로 지정하면서, 본격적으로 제도적 실험이 시작되었다. 지정의 핵심 목적은 창의적 리모델링 촉진, 공공디자인 향상, 지역 정체성 유지, 생활밀착형 산업 활성화 등에 있었다.

특별건축지침은 일반적인 건축기준을 유연하게 적용하는 동시에 공공성과 창의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예를 들어, 노후 공장 건물의 리모델링 시 원형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복합기능을 수용할 수 있도록 건폐율과 용도변경 기준을 탄력적으로 조정했고, 1층 개방형 공간(오픈 스트리트)의 설치를 유도하며 보행친화적 도시환경을 구현하였다. 또한, 주차장 기준 완화 대신 공유주차와 탄력적 교통수단 연계계획이 수립되었고, 외장재 및 색채계획 역시 성수동의 기존 건축적 언어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실험적 적용이 가능하도록 지침을 마련하였다.

이와 함께, 서울시와 성동구는 성수동 지역의 설계 가이드를 마련하고, 공공성과 조화를 이루는 민간개발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발굴했다. 성수동 특별건축구역은 ‘규제를 완화하되 공공성을 강화한다’는 서울시의 건축행정 철학이 반영된 대표 사례로 꼽히며, 이후 유사 제도의 확산에도 중요한 기준점을 제공하였다.

 

3. 리모델링 적용 사례: 공간 재생과 창의적 설계의 결합

성수동 특별건축구역 지정 이후, 다양한 리모델링 프로젝트가 이뤄졌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대림창고’를 들 수 있다. 대림창고는 과거 인쇄공장으로 사용되던 산업건축물이었으나, 리모델링을 통해 북카페, 전시관, 공연장, 레스토랑 등이 혼합된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하였다. 이 과정에서 건축물의 높이제한과 건축선 일부를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었으며, 건축 외관의 물리적 보존과 현대적 기능 도입의 균형이 가능해졌다.

또 다른 사례는 ‘어반소스’ 프로젝트다. 과거 창고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복층형 팝업스토어와 공유 오피스, 푸드코트, 브랜드 쇼룸으로 재구성한 이 공간은, 복합용도 수용을 위한 건축법상 용도 구분 해석의 유연성이 없었다면 실현 불가능했을 것이다. 특별건축구역 지정을 통해 용도 혼합과 층별 기능 분리를 적용할 수 있었고, 공간 가동성과 경제적 지속가능성 확보에도 성공하였다.

이 외에도 성수연방, 할아버지 공장, 포지티브 호텔 등 다수의 건축물들이 특별건축지침에 따라 리모델링되며 지역 내 새로운 창업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공간들은 지역 주민, 관광객, 창작자들이 함께 사용하는 복합적 사회 공간으로 기능하며, 도시재생의 핵심인 ‘공공성과 다양성의 결합’을 건축을 통해 실현한 예시로 평가된다.

 

4. 특별건축구역 제도의 효과와 도시정책적 시사점

첫째, 성수동 사례는 특별건축구역 제도가 도시재생의 촉매제로 작용할 수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우선, 제도 도입 이전에는 법적 제한으로 인해 개별 건축주의 창의적인 건축계획이 번번이 좌절되었으나, 지정 이후에는 창의적 리모델링의 제도적 실현 가능성이 대폭 확장되었다. 이는 민간의 참여를 유도하고,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둘째, 도시계획과 건축설계가 ‘분리된 행위’가 아닌 ‘통합된 전략’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었다. 과거에는 도시계획이 추상적인 방향만 제시하고, 개별 건축행위는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구조였다면, 특별건축구역 제도를 통해 공간 설계가 도시계획과 연동되어 실행되는 실효적 통합관리체계가 가능해졌다.
셋째, 성수동 사례는 특별건축구역이 단지 ‘규제 완화 수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도시 정체성과 공공성을 실현하는 실험적 플랫폼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실제로 성수동 일대에서는 주민들이 리모델링 공공 공간을 문화 프로그램과 지역 커뮤니티 활동에 활용하면서, 도시재생의 본래 목적이 실현되고 있다.

이러한 성과는 단기적인 사업 성과를 넘어, 장기적인 도시 비전 속에서 특별건축구역 제도가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모델로 평가된다. 특히, 자생적 재생이 진행 중인 다른 도시에서도 이와 같은 맞춤형 규제 유연화 전략이 정책화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5. 제도 운영상 과제와 개선 방향

다만 성수동 사례에도 제도적 한계와 정책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첫째, 특별건축구역의 지정 범위가 정밀하지 않을 경우, 일부 지역에서는 지나치게 상업화되거나 투기적 리모델링이 이루어지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실제로 성수동 내 일부 프로젝트는 공공성을 담보하기보다는 고급 브랜드 매장 위주로 공간이 구성되어 ‘젠트리피케이션’ 우려를 낳고 있다.
둘째, 특별건축지침이 초기에는 유연성을 발휘했지만, 일정 시간이 흐른 후 제도 적용의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이는 설계자, 인허가 부서, 주민 간 소통 체계가 구조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며, 향후 표준화된 심의 가이드라인과 사후 평가 체계 마련이 필수적이다.
셋째, 장기적인 관리체계 부재도 문제다. 일단 리모델링이 완료되면 이후 유지관리나 공동체 활용 방식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부족한 실정이다. 성수동과 같이 특별건축구역 지정이 활발한 지역은 도시재생지원센터와 연계한 공간 운영 가이드라인이나 지역기반 관리조직(MGO) 구축이 필요하다.

 

성수동 특별건축구역 리모델링 사례는 제도적 유연성과 지역 특성 반영이라는 두 축이 잘 조화될 때, 도시재생과 건축이 공공성을 바탕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이는 앞으로의 도시정책, 특히 창의적 도시재생 모델 구축과 규제개혁의 접목 가능성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